아이가 말을 안 듣는 게 정말 아이 잘못일까요? 저는 한동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큰누나네 조카를 보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부모의 기준이 아이의 관심과 어긋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 글은 그 경험에서 출발합니다.
부모 기준이 아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큰누나네 조카는 어릴 때 사람을 그리면 머리와 팔다리만 표현한 졸라맨 수준이었습니다. 솔직히 그때 저도 "이 아이는 미술 쪽은 아니겠구나" 하고 판단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아이가 미술을 배우고 싶다고 했고, 뭔가 이상하다 싶어 곰곰이 되돌아봤습니다. 알고 보니 그 아이는 만화를 창의적이고 재미있게 표현할 줄 알았고, 핸드폰 디자인을 꽤 그럴싸하게 해냈습니다. 못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부모의 기준이 아이의 관심 방향과 달랐을 뿐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아이가 사람을 잘 못 그리면 표현력이 부족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이를 관심 대상의 차이로 설명합니다. 발달심리학(Developmental Psychology)이란 아이가 성장하면서 인지·정서·행동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사물 중심의 관심을 가진 아이는 사람 형태보다 구조물, 기계, 이동 수단 같은 대상에 먼저 집중합니다. 결핍이 아니라 방향성의 차이입니다.
제 조카 이야기도 비슷합니다. 그 아이는 5살 때부터 도로, 지도, 나무만 그렸습니다. 처음엔 솔직히 걱정이 됐습니다. 그런데 전지를 사줬더니 전지 가득 엄청나게 복잡한 도시를 그려냈습니다. 날마다 한 시간씩 그 전지를 채웠습니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그 집중력에 먼저 놀랐습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 지금도 마음에 걸립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가 흔히 빠지는 함정이 있습니다. 바로 결핍 교정 접근법입니다. 결핍 교정 접근법이란 아이의 약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보완하려는 교육 방식으로, 아이가 잘하는 영역을 방치하고 못하는 것만 고치려 하는 방식입니다. 문제는 이 방식이 아이의 강점 자체를 꺾어버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국내 아동 발달 전문가들도 아이의 강점 기반 교육이 장기적으로 더 높은 성취를 이끈다고 강조합니다(출처: 육아정책연구소).
부모가 아이를 볼 때 점검해야 할 것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이가 반복하는 행동이 집착인지, 탐구인지 먼저 구분할 것
- 아이가 잘 못하는 것을 고치기 전에 잘하는 것을 먼저 파악할 것
- 평가의 기준이 부모의 경험과 기대에서 나온 것인지 돌아볼 것
탐구력을 키우는 가점제 교육의 실제
교육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감점제와 가점제입니다. 감점제 교육이란 처음부터 완성된 기준을 놓고 실수할 때마다 점수를 깎는 방식으로, 아이가 시도 자체를 두려워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가점제 교육은 0에서 출발해 시도할 때마다 점수를 쌓는 방식으로, 아이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어느 7살 아이가 3년 동안 기차 건널목 차단기에만 집착했다는 사례가 있습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당연히 불안합니다. 그런데 "그만해"가 아니라 "더 만들어보자"로 접근했더니 3개월 후 아이 스스로 차단기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관심이 주차장 차단기, 인터폰, 전자기기, 모터 구조로 자연스럽게 확장됐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예상 밖의 결과였습니다. 억지로 끊으면 오히려 더 집착하게 되고, 충분히 몰입하게 두면 스스로 확장한다는 것을 이 사례에서 다시 확인했습니다.
여기서 작동하는 원리가 바로 몰입 기반 확장(Flow-based Expansion)입니다. 몰입 기반 확장이란 아이가 특정 관심사에 충분히 몰입했을 때 자연스럽게 인접 영역으로 관심이 넓어지는 현상으로, 외부에서 강제로 전환을 유도하는 것보다 훨씬 지속적인 탐구력을 만들어냅니다. 미국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가 제안한 몰입 이론이 이 근거가 됩니다.
한편으로는 이 문제가 가정에서만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학교 교육 현장에서도 여자아이는 잘하고 남자아이는 부족하다는 인식이 은연중에 작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남녀 문제로 단순화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남자아이라고 다 같은 건 아니고, 여자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보다는 개별 아이의 인지 발달 방식과 관심 구조를 이해하려는 접근이 훨씬 본질에 가깝습니다. 인지 발달(Cognitive Development)이란 아이가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점진적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으로, 아이마다 그 경로와 속도가 다릅니다. 교육부 역시 개별 학습자의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교육을 강조하고 있습니다(출처: 교육부).
아들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참 와닿습니다. 제가 직접 조카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느낀 것도 같습니다. 소통이 조금씩 어긋나다가 나중에 완전히 단절되는 부모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 아이가 무엇에 반응하는지를 먼저 들여다봐야 합니다.
아이가 말을 안 듣는다, 산만하다, 집착이 심하다는 느낌이 들 때, 그게 문제인지 아니면 성향인지 한 번 더 질문해 보시길 권합니다. 저도 그 질문을 더 일찍 했더라면 조카에게 동감과 칭찬을 더 많이 건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특성에서부터 교육을 시작하는 것, 그게 가장 실용적이고 오래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82UZKKaO1qc&list=PL5Tbxq0BhYjTEHk-3sQf92K544o0-pThQ&index=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