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아들이 맞고 왔다는 말을 듣고 속에서 뭔가 치밀었습니다. "왜 가만히 있었어?"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습니다. 아들을 키우다 보면 내 안에 숨어 있던 오래된 편견이 튀어나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아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저도 여전히 배우는 중입니다.
아들의 기질, 바꾸려 하면 생기는 일
어느 날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더니 친구가 자기를 때렸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래서 어떻게 했어?"라고 물었고, 아들은 때리지 말라고 했는데도 또 때렸다고 했습니다. 결국 선생님께 말씀드렸고, 선생님이 그 친구를 혼내줬다는 말로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그 순간 제 어릴 적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저 역시 내향적인 아이였고, 맞고 왔을 때 "너도 때리고 와"라는 말을 들어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마음속에 남은 건 분노가 아니라 '남자답지 못했다'는 수치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들에게 똑같은 말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마음 같아선 "더 세게 맞서"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제 감정을 해소하려는 것이지 아이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기질(temperament)입니다. 기질이란 타고난 행동 성향, 즉 환경이나 교육으로 완전히 바꿀 수 없는 개인의 고유한 반응 패턴을 의미합니다. 아이를 교육으로 원하는 방향으로 완전히 빚을 수 있다고 믿는 분들이 많지만, 기질은 생각보다 훨씬 단단합니다. 억지로 바꾸려 할수록 아이에게는 자기부정감(self-rejection), 즉 자기 자신을 잘못된 존재로 여기는 심리적 상처가 쌓일 수 있습니다.
아들이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지 않았을 때, 저는 솔직히 대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이 아이의 기질이고, 그 기질을 존중하는 것이 진짜 교육의 시작이라고 느꼈습니다.
발달속도, 느린 게 부족한 게 아닙니다
혹시 아들이 또래보다 말이 늦거나 글씨 쓰는 걸 유독 힘들어한다고 느끼신 적 있으신가요? 그 차이에는 생물학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에 비해 언어 발달과 소근육 발달이 전반적으로 느린 편입니다. 소근육 발달이란 손가락이나 손목처럼 작은 근육을 정교하게 제어하는 능력으로, 글씨 쓰기, 가위질, 젓가락질 같은 섬세한 동작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이 발달이 늦다고 해서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속도가 다를 뿐입니다.
실제로 한국 교육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초등 저학년 남학생의 언어 및 쓰기 능력 발달은 여학생보다 평균적으로 6개월에서 1년 정도 늦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한국교육개발원). 이 차이를 모르면 부모도, 교사도 아이에게 불필요한 압박을 줄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아들이 말보다 행동으로 먼저 반응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습니다. 뭔가 불만이 있어도 말로 표현하지 않고 그냥 방에 들어가버리는 식이었습니다. 처음엔 답답했는데, 이게 언어 표현이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시기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는 걸 알고 나서는 기다릴 수 있게 됐습니다.
남자아이들이 가진 또 다른 특성으로 자율성 추구 성향이 있습니다. 지시를 그대로 따르기보다 자기 방식대로 해보려는 경향인데, 이걸 단순히 '말을 안 듣는 아이'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것이 창의적 사고의 씨앗이라고 생각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산만한 아이, 집중을 못하는 걸까요?
"우리 애는 왜 이렇게 산만하지?"라는 생각, 한 번쯤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산만해 보이는 아이가 사실은 집중을 못하는 게 아니라 다른 곳에 집중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관심의 방향이 다른 것뿐입니다. 이 아이들은 주변 환경을 더 넓게 관찰하고, 어른이 놓치는 디테일을 기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가 있는 아이를 예로 들면, 여기서 ADHD란 주의 집중, 충동 조절, 과잉행동 등에서 지속적인 어려움을 보이는 신경발달장애를 말합니다. 단순히 버릇없는 아이나 의지가 약한 아이가 아닙니다. 뇌의 실행 기능(executive function)과 관련된 신경학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실행 기능이란 계획 세우기, 충동 억제, 순서 지키기처럼 목표 지향적 행동을 조절하는 뇌의 관리 능력을 뜻합니다.
우리가 "집중력이 없다"고 지적하는 그 아이가, 어쩌면 우리가 정해놓은 기준에 맞지 않아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꽤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기준 자체를 의심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미국소아과학회(AAP)에서는 ADHD 아동의 강점으로 창의적 사고, 높은 에너지, 과제에 몰입했을 때의 집중력을 꼽기도 합니다(출처: 미국소아과학회). 결핍의 언어로만 이 아이들을 정의하는 것이 얼마나 편협한 시각인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산만한 아이를 다르게 보기 위한 시각 전환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집중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집중 대상이 다를 수 있습니다
- 주변 환경에 대한 관찰력이 오히려 뛰어난 경우가 많습니다
- ADHD는 의지의 문제가 아닌 신경발달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 "이 아이가 무엇에 끌리는가"를 먼저 살피는 것이 더 유효합니다
과제 분리, 아이를 존중한다는 것의 의미
아이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저에게 가장 도움이 됐던 개념은 과제 분리(task separation)입니다. 과제 분리란 아이의 삶에서 아이가 책임질 부분과 부모가 책임질 부분을 구분하는 것으로, 아들러 심리학에서 나온 개념입니다. 부모가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할 때, 오히려 아이의 자율성과 자존감이 손상될 수 있다는 시각에서 출발합니다.
아이들은 백지가 아닙니다. 이미 희미하게 밑그림이 그려진 존재입니다. 제가 직접 아들을 관찰하면서 느낀 것도 비슷합니다. 같은 환경에서 자라더라도 아이마다 반응하는 방식이 전혀 다릅니다. 어떻게 교육하느냐보다 이 아이가 어떤 아이인가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순서상 맞습니다.
저는 아들이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한 그날, 처음으로 이 아이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헤쳐나가는 아이인지 조금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지 않고, 어른에게 도움을 구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게 저는 대견했습니다.
아이를 관찰하는 하루하루가 즐겁기도 하고 어렵기도 합니다. 정답이 없는 일이니까요.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아이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내려놓는 순간, 그 아이가 비로소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어떻게 교육할까'를 고민하기 전에, 오늘 하루 이 아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그냥 지켜봐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날이 있습니다. 그게 결국 아이를 존중하는 태도이고, 그 태도에서 진짜 교육이 시작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교육·심리 상담 조언이 아닙니다. 아이의 발달이나 행동에 대해 구체적인 도움이 필요하신 경우에는 전문가와 상담하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F7qeGkNhvF0&list=PL5Tbxq0BhYjTEHk-3sQf92K544o0-pThQ&index=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