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친구를 좋아하는데 왜 자꾸 혼자가 될까요. 이 질문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솔직히 의아했습니다. 좋아하는데 왜 멀어지냐고요. 그런데 실제로 그런 아이들이 생각보다 꽤 많습니다. 제 아이도, 그리고 예전에 제가 과외를 했던 중학생 제자도 비슷한 결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회성 발달이 늦은 아이, 문제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친구들과의 놀이에서 계속 술래만 맡거나 놀이터에서 말로 공격을 받는 장면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또래 다툼처럼 보이지만, 이 시기의 또래 관계는 아이의 자아 개념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실제로 아동의 자존감(self-esteem)은 초등 저학년 시기에 또래 관계 경험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여기서 자존감이란 단순히 자신감이 아니라 '나는 가치 있는 존재인가'에 대한 내면의 평가를 의미합니다.
이 아이는 나쁜 의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사람을 무척 좋아했고,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상대방을 안거나 손이 먼저 나가는 행동이 반복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충동 조절(impulse control)의 문제입니다. 충동 조절이란 자신의 즉각적인 반응을 억제하고 상황에 맞게 행동을 조절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이 능력이 부족하면 아이 입장에서는 분명한 애정 표현이지만, 상대방 입장에서는 불편하거나 공격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제가 과외를 했던 제자가 떠오르는 것도 이 대목입니다. 그 학생은 자신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이야기만 나오면 표정이 확 밝아졌지만, 다른 맥락에서는 거의 무표 심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수업 내용만 전달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아이에게 필요했던 건 지식보다 관계의 언어를 익히는 기회였을 겁니다.
아동 발달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 시기 사회성 개입에 대한 시각이 갈립니다. 아이가 스스로 배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 반면, 저는 의도적인 연습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쪽입니다. 사회성은 자연스럽게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 → 이해 → 모방 → 상호작용의 단계를 거쳐 쌓이는 것인데, 어떤 아이들은 이 과정이 또래보다 느리게 진행됩니다. 그 단계를 의도적으로 채워주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사회성 지도에서 핵심은 '시의성(timeliness)'입니다. 시의성이란 문제 행동이 일어난 그 순간에 바로 피드백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황이 지나고 나서 "아까 그건 잘못됐어"라고 말하면 아이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행동이 일어난 직후에 "방금 그 행동이 친구에게 이렇게 느껴졌을 거야"라고 구체적으로 알려주면 아이는 훨씬 빠르게 이해합니다.
실제로 이 방식을 꾸준히 적용한 아이들에서 충동적 행동이 줄고, 갈등 상황에서도 스스로 조절하려는 모습이 관찰되었다는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아동의 사회정서학습(SEL, Social Emotional Learning)은 반복적 연습을 통해 향상된다는 것이 교육 현장에서도 점점 받아들여지는 방향입니다. SEL이란 자기 인식, 자기 조절, 타인에 대한 공감 등 사회적 상황에서 필요한 능력을 학습하는 과정을 말합니다(출처: CASEL).
충동 조절과 자존감, 부모가 할 수 있는 것
아이의 행동을 직접 보여주는 것도 매우 효과적입니다. 자신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경험, 즉 자기 모니터링(self-monitoring) 능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기 모니터링이란 '내가 지금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인식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이 능력이 낮으면 아이는 자신의 행동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잘 모릅니다. 거울처럼 상황을 되짚어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내가 이렇게 했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제 아들은 고기능 자폐를 갖고 있습니다. 사회성이 부족한 면이 있고, 맥락에 맞지 않는 자기만의 이야기를 할 때가 있어서 솔직히 친구 관계가 걱정이 됩니다. 그 걱정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인지 이 글을 쓰면서 더 또렷하게 느낍니다. 제 제자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느꼈던 안타까움이, 지금은 부모의 입장에서 훨씬 크고 무겁게 다가옵니다.
부모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이의 행동 의도를 먼저 파악하고, 나쁜 아이라는 전제 없이 접근한다
- 문제 행동이 발생한 직후에 구체적으로 피드백한다
- "하지 마"가 아닌 "이럴 때는 이렇게 해보자"는 방식으로 대안을 제시한다
- 같은 상황을 역할극으로 반복 연습시킨다
- 환경 자체를 바꾸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로 열어둔다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소위 '조금 다르다'라고 느껴지는 친구가 집단 내에서 표적이 되는 경우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괴롭히는 쪽은 대개 또래 집단에서 영향력 있는 아이들이었고, 도와주는 친구가 있을 때와 없을 때 그 결과는 크게 달랐습니다. 부모가 직접 그 상황을 막을 수는 없지만, 아이가 상황을 스스로 헤쳐나갈 힘을 갖도록 옆에서 꾸준히 도와주는 것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동 정신건강 연구에 따르면, 또래 관계 문제가 반복될 경우 내재화 문제(위축, 불안)와 외현화 문제(공격성, 충동성)가 함께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출처: 한국아동패널연구).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의 개입은 빠를수록 효과가 큽니다.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 부모님들께 드리고 싶은 말은, 이건 아이의 결함이 아니라 아직 배우는 중이라는 겁니다. 방향만 잘 잡으면 아이는 충분히 변화할 수 있습니다. 저도 그걸 믿으면서 하루하루 하고 있습니다. 지치실 때도 있겠지만 같이 버텨가 봅시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아동 심리 또는 의료 조언이 아닙니다. 아이의 상태가 걱정된다면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나 전문 상담기관에 방문하시길 권합니다.